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 농업의 미래로 ‘스마트팜’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팜을 시작하려는 청년과 외지인들은 한 가지 커다란 장벽에 직면합니다. ‘농지’의 문제입니다. 좋은 기술과 열정, 자본을 갖추고 있어도 농사 지을 땅이 없다면 시작조차 할 수 없겠죠.
정부는 2018년부터 ‘스마트팜 혁신밸리’ 사업을 추진하며 청년농업인 양성, 기술개발, 수출 등의 목표를 세우고 다양한 지원정책을 펼쳐왔고, 농림축산식품부와 각 지자체에서는 시설 구축비용의 일부를 지원하고, 청년농업인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과 창업자금까지 제공하면서 적극적인 유입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화려한 지원정책 뒤에 가려진 현실
정부와 지자체의 스마트팜 지원사업 공고를 보면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매력적입니다. 시설 구축비의 30~50%를 지원하고, 저금리 융자까지 제공합니다. 청년농업인을 위한 별도의 지원금과 컨설팅 서비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지원사업의 신청서를 작성하다 보면 한 가지 선결조건이 등장합니다.
“농지 확보 계획 또는 임대차계약서”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스마트팜을 시작하려는 외지인들은 대부분 자신의 농지가 없습니다. 결국 농지를 구매하거나 임대해야 하는데, 여기서 현실의 장벽과 마주하게 됩니다.
닫힌 문: 외지인에게 임대하지 않는 농촌 현실
농촌 지역에서는 외지인, 특히 연고가 없는 사람들에게 농지를 임대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 이유는 다양합니다:
- 신뢰의 문제: 농촌 사회는 여전히 인맥과 신뢰를 중요시합니다. 마을 주민이나 지인의 소개 없이 갑자기 나타난 외지인에게 땅을 맡기는 것을 불안해합니다.
- 장기적 관계: 농지 임대는 단기간이 아닌 장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미 알고 있는 지역 주민에게 임대하는 것이 훨씬 안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귀농 실패 우려: 많은 귀농인과 청년창업자들이 초기에 실패하고 도시로 돌아가는 사례를 목격했기 때문에, 장기계약을 했다가 중도에 포기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걱정합니다.
- 지역 공동체 문제: 외지인이 지역 문화와 관습을 이해하지 못해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우려합니다.
농지은행, 그러나 비어있는 창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농지은행’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농어촌공사가 관리하는 이 제도는 농지를 매입하거나 임차한 후, 필요한 사람들에게 임대해주는 시스템입니다. 특히 청년농업인과 귀농인을 위한 우대 조건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요? 대부분의 지역에서 농지은행을 통해 적합한 농지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농지은행에 등록된 농지는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특히 적합한 조건(전기, 수도, 도로 접근성 등)을 갖춘 땅은 더욱 희소합니다.
- 지역 편중: 농지은행의 물량은 지역별로 크게 편중되어 있어, 선호하는 지역에서 농지를 찾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 정보 접근성 한계: 농지은행 시스템은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고 실시간 업데이트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좋은 땅이 나오더라도 빠르게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땅이 없다면 그 대안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 새롭게 시작하려는 분들과 임대 기간 만료를 앞 둔 분들을 위한 현실적인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1. 지역 네트워크 구축부터 시작하기
농지 확보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역 주민들과의 네트워크 형성입니다. 관심 있는 지역에 먼저 거주하며 지역 행사에 참여하고, 기존 농업인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역 농협이나 농업기술센터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2. 단계적 접근: 작은 규모부터 시작하기
처음부터 대규모의 형태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소규모로 시작하여 실력과 신뢰를 쌓아가는 방법이 효과적입니다. 컨테이너형이나 작은 면적의 시설하우스부터 시작해 점차 확장해 나가는 전략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3. 지자체 중개 프로그램 활용하기
일부 지자체에서는 귀농인과 지역 농업인을 연결해주는 중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런 공식적인 채널을 통하면 신뢰도 측면에서 유리할 수 있습니다. 지역 농업기술센터나 귀농귀촌지원센터에 문의하면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4. 협업 농장 모델 검토하기
최근에는 여러 농업인이 협업하는 형태의 농장 모델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미 토지를 보유한 농업인과 기술, 자본을 가진 청년이 협업하는 방식으로, 윈-윈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5. 공유 플랫폼 활용하기
일부 지역에서는 시설을 공유해 사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전남 나주의 ‘스마트팜 혁신밸리’처럼 초기 창업자들을 위한 임대형 농장을 운영하는 곳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시점
개인적인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성공적인 활성화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제도적 개선이 필요합니다:
- 농지은행 활성화: 농지은행에 등록된 농지의 양을 늘리고, 특히 적합한 조건을 갖춘 농지를 확보하는 데 더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야 합니다.
- 지역 주민과 외지인 간 중개 시스템 강화: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역 농지 소유자와 귀농 귀촌 창업 희망자를 연결해주는 공식 중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 공공 임대형 확대: 정부나 지자체 주도로 해당 단지를 조성하고, 이를 청년농업인에게 임대하는 모델을 확대해야 합니다. 현재 일부 지역에서 시행 중인 이 모델은 더욱 확대될 필요가 있습니다.
- 세제 혜택 확대: 외지인에게 농지를 임대하는 농지 소유자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부분이 가장 빠른 벽을 허물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땅과 사람을 잇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스마트팜은 분명 한국 농업의 미래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기술과 지원정책이 있어도, 그것을 실현할 ‘땅’이 없다면 공허한 구호에 그치고 맙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지원정책을 수립할 때, 단순히 시설 구축비나 교육 지원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농지 확보’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동시에 농촌 지역사회도 외지인과 청년들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청년농들을 통해 한국 농업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도록, 땅과 사람을 잇는 새로운 접근방식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정책은 이제 ‘지원’을 넘어 ‘연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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